| |||||||||||||||||||||||||||||||||||||||||||||||||||||||||||||||||||||||||||||||
|
귀농공동체 실험 10년… 영농조합·대안학교·지역 조직 꾸리며 주목받는 공동체 모델, 면단위에서는 보기 드문 인구증가세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1997년이었다. 그 뒤 귀농 흐름은 한동안 주춤해졌다가 2004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외환위기 직후와 달리 ‘생계형’만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아나서는 ‘가치형’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올해로 10년의 역사를 맞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 귀농공동체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 귀농의 좌표를 돌아보았다. 편집자
▣ 남원=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7월16일 서울에서 전북 남원으로 내려가는 동안 군데군데에서 비를 만났다.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인월
방면으로 빠진 자동차는 20분쯤 뒤 실상사 매표소 앞에 가 닿았다. 매표소 입구와 곧바로 이어지는 다리 아래로 폭이 50~60m는 될 정도로
넓은 내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에서도 깊고 맑기로 소문난 뱀사골로 이어지는 물길이다.
닭똥 섞은 유기질 비료, ‘김매는’ 우렁이
길 안내를 받은 대로 다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돌았더니 뚝방길이 이어진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500m쯤
가자 인근에선 제일 번듯해 보이는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샛길로 빠져 비닐하우스 쪽으로 들어서자 거주지로 쓰이는 듯한 조립식 건물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 앞 벽에는 세로로 쓴 문패가 보였다. ‘지리산 친환경 영농조합.’ 영농조합 직원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에서 잠깐 앉아 있었더니 곧 이마가 훤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들어섰다. 미리 약속을 한 터여서 굳이 묻지 않아도 조합 대표를 맡은 이해경(51)씨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생명 농부들의 공동체/ 지리산 친환경 영농조합’이라고 돼 있다. 그 아래로 ‘친환경 농법 상담, 친환경 자재(유기질
비료·우렁이·미생물), 친환경 농산물 판매’라고 적혀 있어 영농조합의 구실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해경 대표는 “(영농조합은) 지난해 3월 발족했고, 귀농자 10명을 비롯해 산내면 지역 농민 44명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 농장의 규모는 30㏊(9만 평) 수준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친환경 생태 농업과,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지는 ‘이름표 있는 농업’으로 가기 위해 영농조합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생명을 살리는 농업은 혼자선 안 된다. 더불어 해야 한다. 내 논에서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아도 주변 논에서 농약 치고 화학농업 하면 친환경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름표 있는 농업’은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걸 확인시켜줘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농조합
건물 마당 한켠에 마련돼 있는 커다란 사각 기둥 모양의 유리 용기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여기에 7가지 품종의 벼를
심어놓았다. (투명하게 내비치는 뿌리 지점의 녹색 부분을 가리키며) 이게 남조류나 광합성균 같은 미생물이 건강하게 자라 땅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닭똥·생석회를 섞어 만든 유기질 비료를 쓴 데 따른 효과다.” 유리 용기의 재배 환경은 조합 건물에 잇닿아
있는 논의 환경을 그대로 구현한 것으로,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산내면 지역 농민들의 자생적인 공동 생산·판매 조직인 ‘지리산 친환경 영농조합’은 꼭 10년 전인 1997년
개원한 실상사 농장이 산내면 귀농공동체로 발전하는 연장선 위에 있다. 실상사가 귀농자들에게 1만 평의 땅을 제공함으로써 시작된 산내 지역의 귀농
흐름은 이듬해인 1998년 귀농 교육을 하는 실상사 귀농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 뒤 생태농업 운동을 중심으로 삼는 시민단체 (사)한생명이
생겨났다. 또 귀농인들을 중심으로 중등 과정의 대안학교 ‘실상사 작은학교’를 세우는 등 지역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지들이 차근차근 생겨나 모양새를
갖췄다.
‘이름표 있는 농업’, 영농조합 필수적
지난해 출범한 영농조합은 귀농인뿐 아니라 원지역 주민들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띤다. 출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산내면 900여 세대의 5%도 안 되는 수준으로 한계가 있음에도 친환경 생태농업을 고리로 귀농인과 원주민들이 ‘경제적 접점’을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대표는 “산내면에서는 귀농자들이 지역의 중심을 이룰 조건이 마련돼 있다”며 “전국적으로
주목되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산내면 면사무소에 따르면 이 지역에 들어와 있는 귀농자들은 250명 안팎에 이른다. 산내면 전체 인구
2102명(6월 말 현재)의 10%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들 귀농자는 한 군데 따로 모여살지 않고 산내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사)한생명, 대안학교, 귀농학교 등을 고리로 두루 관련을 맺고 있어 통상 ‘귀농공동체’로 불리고 있다. 산내면이 지방의 면 단위 행정구역으로는
이례적으로 인구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귀농공동체에 힘입은 바 크다. 산내면 인구는 지난해 말 2095명이었다. 1990년만 해도 3천 명
가까웠던 인구가 2000년 1900명대로 떨어졌다가 귀농 인구 유입으로 2천 명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 공동체의 최소 조건은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귀농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산내면 귀농공동체의 출발은 1997년 농민운동가인 이병철 귀농운동본부
대표와 당시 실상사 주지였던 도법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도법 스님 주도의 불교결사체(승가공동체)인 선우도량에 강사로 초빙된 이 대표는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데 불교계가 나서줄 것을 요청했고, 그에 따라 실상사는 귀농인을 위한 농업 실습용 땅 1만 평을 내놓았다.
1기 졸업생은 몽땅 도시로
그즈음 이해경 대표는 전북 장수에서 친환경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 대표가 농업과 농촌에 관심을 가진 실마리는 1992년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른 쌀 시장 개방 문제였다. 경제학 공부를 하고 시간강사로 일하는 처지에서 농업 개방 문제를 화두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을 풀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자료를 찾다가 만난 책이 <생명의 농업>이었다. ‘일본의 농성(農聖)’으로 불리는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쓴 책으로 자연농법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생태적 가치, 농업의 중요성,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를 인식하는 가치관의 전환을 경험했다.”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귀농 준비에 나선 이 대표는 이듬해 청정 마을로 소문난 장수에서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
그즈음 이병철 대표를 만나고, 그를 통해 도법 스님을 알게 됐다. 도법과 의기투합해 실상사 농장에 이어 귀농학교 설립을 준비하던 이병철 대표는
이해경씨에게 귀농학교 초대 교사직을 권유하고 이씨는 이를 수락한다. 이해경 대표는 1년 만에 장수의 귀농 활동을 접고, 1998년 9월 문을 연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귀농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나섰다. 새로 벌이는 일이 으레 그렇듯 산내면 귀농학교의 초창기는 순탄치 않았다. 13명에 이르렀던 1기 졸업생들은 농촌에
정착하지 못하고 몽땅 다시 도시로 떠나버렸다. 초창기 교육 프로그램이 짜임새 있게 마련되지 않은데다 귀농인들의 의지 또한 약했던 탓이었다.
이해경 대표는 “외환위기로 실직한 이들이 (사실상) ‘타의’에 의해 농촌으로 오다 보니 오래 머물지 못했던 것”으로 풀이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농촌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귀농하는 이들이 많아 정착률이 높다”며 “전체적으로 50~60%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산내면에 귀농한 이들의 면면이나 귀농 동기는 다양하다. 임대료가 싼 작업 공간을 찾아 시골로 내려온 예술가 집안이
있는가 하면,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귀농인도 있다. 자식을 대안학교에 보내려고 귀농한 사람도 볼 수 있었다. 한생명 같은 시민단체의 활동가로
일하는 이들은 30~40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귀농학교 교사도 대부분 포함돼 있다. 다양한 모습의 귀농에서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은 농사를
전업으로 삼기보다는 별도 생계수단을 갖고 농사는 먹을 만큼만 짓는 ‘반농반업’이 많다는 점이다.
“도시보다 더 자본에 길들여져 있어”
산내면 귀농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 공통된 양상은 이산 가족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나 귀농학교 교사로서 받는 월급은 100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당분간 ‘주말 가족’으로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다른 지역의 귀농인들처럼 산내면 귀농공동체 역시 이렇게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을 주저케 하는 대목이다. 산내면 귀농공동체가 안고 있는 숙제는 이뿐이 아니다. 실상사 농장을 연 지 10년에 이르는 동안 일군 소중한 성과의 이면에는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의 심리적·사회적 갈등 분위기가 깔려 있다. 원주민 쪽에선 ‘마을의 주도권이 온통 외지인에게 돌아간다’며 경계하는 눈길을 보내고, 귀농인 쪽은 ‘터줏대감으로 행세하며 외지인에게 너무나 배타적이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갈등의 축은 귀농인들 속에도 형성돼 있다. 실제 얘기를 나눠보면 (사)한생명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이념적·가치지향적인 귀농인과, 생계에만 몰두하는 현실적 성향의 귀농인들 사이에 거리감이 꽤 느껴진다. 이병철 대표는 “귀농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고, 귀농인들 각자 삶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뚜렷한 게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는 데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라고 말했다. “갈등이 나타나는 건 세상 사는 모습이니 필연적이다. 다만, 각자 성격이나 성향이 너무 뚜렷하다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차이에서도 알력이 생긴다.” 이 대표는 “농촌은 지금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고 진단한다. “농촌은 낙원이 아니다. 도시처럼 농촌도 병들어
있다. 정직하게 말하면 농민들 마음은 도시 사람들보다 더 자본에 길들여져 있다.” 그는 “더 많이 빼앗기고 수탈을 당하면서 자본에 ‘저항’하는
동시에 ‘집착’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농촌의 현실을 직시해야 실망이 덜 하고, 궁극적으로는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된다는 뜻으로 읽혔다.
귀농인이 도시민에게 던지는 질문
현장 취재를 마무리한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귀농해 살 수 있을지 자문해봤다.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미리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도시에 눌러 살든, 농촌으로 돌아가든 삶은 역시 만만치 않음을 다시 확인한 느낌이었다. 다만, 도시와 농촌의 삶에서
느껴진 한 가지 차이라면 삶에 대한 물음이었다. 귀농 현장을 보고 왔다는 말에 도시의 지인들이 던지는 질문은 ‘농사지어서 먹고살 수 있냐’로
모인 반면, 현장에서 만난 귀농인들은 도시민 쪽에 ‘거기 삶은 행복한가’라고 묻고 있었다.
| |||||||||||||||||||||||||||||||||||||||||||||||||||||||||||||||||||||||||||||||